황경신/2008소담출판사
17살이 된 니나와, 그녀의 피아노 선생님 시에나, 시에나의 단짝친구 대니 그리고 비오, 제이, 슈테른....
모두 다른 사람이지만 어쩌면 모두 같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. 책을 사놓은지는 꽤 되었는데 섣불리 손을 댈 수가 없었다. PAPER에 연재 되었던 소설이었기 때문에 이미 읽어버린 이야기였지만, 그때문은 아니었다. 나에게 황경신님의 글은 그런 존재이다. 너무나 읽고 싶지만 섣불리 읽을 수 없는 글. 읽은 후에 내 감성이 어떤 반응을 일으킬지 뻔히 알기 때문에 도저히 손을 댈 수 없는 글.
폭풍같은 사랑을 경험하고 도저히 이별을 할 수가 없어서 스스로 사랑의 기억을 봉인해 버린 시에나. 이별하지 못하였기에 또 다른 사랑을 받아들일 수도 없었던 그녀. 그런 그녀 곁에 머물러주는 토마토같은 사람 대니. 그리고 그녀를 사랑하게 되어버린 제이. 제이를 사랑했지만 사랑하지 않았던 니나. 니나의 사랑 비오. 얽히고 설켜있는 듯 보이는 관계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명료하게 보인다. 이들에게 사랑은 피해가야하는 두려움의 존재도 아니고 마냥 설레이게 하는 풋풋한 그것도 아니다. 특별해보이는 사랑들이지만 여전히 일상처럼 느껴지는 잔잔함은 그 어떤 감정의 휘몰아침보다도 강렬하다. 누군가의 마지막을 알면 마음이 편안해 진다는 시에나의 마음,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사랑이 되기보다는 일상이 되기로 결심한 대니의 마음. 사랑, 그 애틋한 달의 뒷편으로 달아나버린 슈테른의 마음. 이제 막 설레이는 사랑을 시작하려는 니나와 비오의 마음. 모두다 나의 이야기이며 너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,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 수는 없다.
황경신님의 글을 처음 만난건 까까머리 고등학생시절, 무가지였던 PAPER가 막 삼천원의 값을 치루기 시작했을 무렵. 그리고 한참이 지난 후, '초콜렛우체국'이라는 단행본. 그리고 또 한참이 지난 후, 우연히 참석하게된 황경신님의 생일 파티. 생일 촛불을 한참 응시하더 그녀의 젖은 눈망울이 잊혀지지 않는다. 그리고 매달 만나는 PAPER에서의 그녀의 글들은 늘 어두운 감성을 토닥토닥 건드려 겨우 잠들어있던 녀석을 깨워주곤 한다. 성내지 않고 어린아이가 투정을 부리듯 깨어난 감성은 늘 나를 어지럽게하지만 그 느낌이 제법 나쁘지만은 않다. 하지만 '정상적인' 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분명 방해가 되는 건 사실이다.
"시작해도 되는 건지 안 되는 건지 생각해볼 사이도 없이,
이미 시작되어버리는 일들이 있어."
낮은 목소리로, 시에나가 말한다.
"그래서 언제나 노력이 필요해."
"무슨 노력이요?"
제이가 묻는다.
"사랑받지 않으려는 눈물겨운 노력."


덧글
thR 2009/11/10 13:04 # 답글
저도 그래요, 이번에 나온 종이인형과 함께 산지 몇주 지났지만 아직도 선뜻 못읽겠어요 지금 읽어버리면 안될것같아서
ll은사자ll 2009/11/12 11:05 #
Good luck-우리 모두에게....